한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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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룡(韓相龍, 1880년 11월 14일 ~ ?)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인물이다.
이완용과 이윤용이 그의 외삼촌이며 조선귀족 한창수와도 친척 관계인, 유력한 친일파 집안에서 태어났다. 1898년 일본으로 유학했고, 이때부터 일본의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1903년 일본이 친일 왕족인 고종의 종형 이재완을 내세워 설립한 한성은행의 총무로 부임하여 실질적인 경영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철저한 친일파로서 일제의 이익에 복무했다. 그는 일본의 신임을 얻어 1923년 이윤용의 뒤를 이어 한성은행 두취(은행장)로 취임했고,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식민지 경제 체제 강화 부문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될 때에는 설립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조선에서 손 꼽히는 거부가 되었다.
한상룡의 친일 행각은 일본인을 찬양 기념하는 각종 사업에서 두드러졌다.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동상을 세우고 이토 히로부미 기념회와 사이토 마코토 기념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하는 등 그는 숱한 일본인의 현창 사업마다 빠지지 않았다. 1919년에 이미 창씨개명을 허가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을 정도로 선구적인 친일파였다.
1930년대부터는 전시 체제를 맞아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친일 자본가로서 모은 돈을 전쟁에 희사하기도 했다. 경성국방의회, 조선국방 비행기 헌납회, 애국금차회, 국민총력조선연맹, 경성부 육군지원자후원회, 조선호국신사봉찬회, 반도무운현창회, 조선임전보국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친일 단체에 참여했으며, 관동군사령부의 사무촉탁을 맡았고, 꾸준한 강연과 기고로 극렬한 친일 활동을 벌였다.
이와 같은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많은 훈장과 표창을 받았고, 중추원 참의(1928년), 중추원 고문(1941년), 칙선 일본 귀족원 의원(1945년)에 임명되었다. 부인인 이용경도 조선총독부의 어용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고 훈장을 받았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포함되었다.
조선인 일본 귀족원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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