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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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용(李允用, 1854년 ~ 1939년)은 친일 인물로, 본관은 우봉(牛峰), 본명은 이경중(李景中)이다.
그는 유명한 친일파 이완용의 형이기도 하다.
평양 출신이다. 흥선대원군의 서녀와 결혼하였으나 사별 후 김기태(金箕台)의 딸과 재혼하였다.
1844년 병조참판, 1894년 형조판서에 임명되었으며, 갑오경장 이후 경무사(警務使)로 근무하다가 이완용, 이범진의 아관파천에 가담, 친러 내각의 군부대신, 농상공부대신을 지냈다.
이완용이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전환하는 동안 지방의 관찰사와 평리원 재판관 등을 역임하다가 1907년 궁내부대신에 임명되어 영친왕이 인질로 일본에 유학갈 때 그를 수행했다.
1910년 국권피탈 후 일제로부터 남작의 칭호를 받았고, 친일파 관료 김종한이 설립한 한성은행 부은행장(1906년), 은행장(1909년 ~ 1923년)을 지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목록에는 그의 작위를 습작한 손자 이병옥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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