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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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 ~ 1616년 4월 23일)는 영국의 극작가, 시인이다. 영국 워릭셔 주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 런던으로 와서 배우가 되었으나 《비너스와 아도니스》로 시적인 재주를 인정받고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 등 4대 비극과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 6세》 등이 있다.
[편집] 생애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 불리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 중부의 영국의 전형적인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비교적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中農)을 겸하고 있었으며, 읍장까지 지낸 유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운이 기울어져 학업을 중단했고 집안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업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나온 시기는 확실치가 않고 다만 1580년대 후반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1590년을 전후한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 국운이 융성한 때였으므로 문화면에서도 고도의 창조적 잠재력이 요구되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배경에 셰익스피어의 천부적 창조성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러나 1592∼94년 2년간에 걸친 페스트 창궐로 인하여 극장 등이 폐쇄되었고, 때를 같이하여 런던 극단도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는데, 이때 신진극작가인 셰익스피어에게 본격적인 활동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당시의 연극계를 양분하는 세력의 하나였던 궁내부장관 극단(당시는 유력자를 명목상의 후원자로 하여 그 명칭을 극단에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의 간부 단원이 되었고, 그 극단을 위해 작품을 쓰는 전속 극작가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서도 활동했으나 극작에 더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전후해서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과시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1594) 등 두 편의 장시(長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의 활동기는 1590년 ∼ 1613년까지의 대략 24년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에 희·비극을 포함한 모두 37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셰익스피어는 평생을 연극인으로서 충실하게 보냈으며, 자신이 속해 있던 극단을 위해서도 전력을 다했다. 1599년 템스 강 남쪽에 지구극장을 신축하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뒤를 이은 제임스 1세의 윤허를 얻어 극단명을 '임금님 극단(King's Men)'이라 개칭하는 행운도 얻었다. 1613년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헨리 8세》를 상연하는 도중 지구극장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616년 세익스피어는 52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편집] 작품 세계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특징은, 처음부터 작품의 줄거리를 자신이 직접 만든 예는 거의 없는 데 있었다. 《햄릿》의 경우는 덴마크의 전설에서, 《오셀로》의 경우는 신시오의 소설 중에서, 《베니스의 상인》의 경우는 14세기 이태리 소설 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는 이태리 소설가 반델로의 작품에서 빌려왔다. 셰익스피어가 극의 줄거리를 가장 많이 빌려온 것은 《리어 왕》 《맥베스》의 경우처럼 영국의 역사,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 소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였다.
문제는 셰익스피어가 마술사와도 같아서, 그의 손만 가면 아무리 진부하고 단조로운 이야기라도 생명과 미를 불어 넣어서 생동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창조한 성격은 왕으로부터 일개 필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여실하게 그려 놓았다. 셰익스피어의 시적 표현력, 천재적인 성격 창조력, 절묘하게 전개하는 구성 등은 작품 중 어느 한 대사를 끄집어 내어도 성격에 꼭 들어맞으며 그 때의 사정에 아주 적절하게 되어 있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이면서, 문학적 가치라든가 주제를 파악하기 힘든 작품이다. 즉 이 작품은 무정한 샤일록에 대한 기독교의 자비를 나타냈다는 설과 샤일록 못지 않게 편협함을 나타낸 기독교인을 풍자한 글이라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니스의 상인》은 아이러닉 코미디라고 불리기도 한다.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설정때문에 반유대적인 편견이 담겨 있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