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 니에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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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 1922년 4월 13일 ~ 1999년 10월 14일)는 탄자니아의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이다. 니에레레는 1922년 영국령 탕가니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니키 민족의 족장이었다. 니에레레는 귀족으로써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사 교육을 받고 3년 간의 실습 후, 장학금을 받아서 영국에서 공부했다. 당시 영국은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독일의 식민지였던 탕카니카를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받았다.
니에레레는 공부를 마치고 1954년에 돌아와 '탕가니카 아프리카 국민 연합', 즉 타누당(TANU)을 설립하고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요구했다. 타누당의 이념은 사회주의 농업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탕가니카의 120개가 넘는 많은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곧 영국은 탕가니카에게 자치권을 주었다. 니에레레의 타누당은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1961년에 정식으로 독립했다. 1964년에는 1963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잔지바르와 합병하여 탄자니아를 건국한다.
니에레레는 사회주의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식민 지배자의 언어가 아닌, 탄자니아에서 널리 쓰이던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학교에서 교육시키도록 권장했다.(북아프리카 지역의 아랍어 사용 국가를 제외) 니에레레는 탄자니아의 사회주의 이념인 우자마를 주장하였다. 우자마 이념은 120개의 서로 다른 민족들이 국가의 통제아래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자는 이론이었다. 그 후 탄자니아에서 우자마는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니에레레의 우자마 경제정책은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농업 위주의 경제 정책으로는 탄자니아의 낙후된 경제를 크게 발전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산업화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자마 이념으로 탄자니아의 민족 통합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니에레레는 1978년에서 1979년까지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쫓아내기 위해 무세베니의 좌익 군대를 도와 우간다의 혁명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니에레레는 1985년에 자신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후계자인 알리 하산 음위니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었다. 1990년까지 타누당의 의장직을 맡았고 199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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