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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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李容九, 1868년 - 1912년 5월 22일)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친일파 인사이다.
자는 대유(大有), 호는 해산(海山). 23세 때 동학당에 입교, 2대 교주 최시형에게 배워서 손병희와 함께 고제(高弟)가 되었다. 1894년 동학혁명 후 교주 등이 잡혀 처형될 무렵 함께 투옥되었으나 곧 사면되었다.
1901년 3월 손병희, 손병흠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손병희의 명교(命敎)를 받고 귀국하여 포교 활동에 종사하다가,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1904년 9월에 동학교도를 중심으로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여 주관하였다.[1] 1904년 송병준의 권고로 일진회와 합쳤다. 러일 전쟁 때 일본군에 적극 협조하고 1905년 손병희가 동학의 전통을 이어 천도교를 포교하자 이에 맞서 시천교(侍天敎)를 창설, 교주가 되었다. 일진회 총위원장, 회장이 되어 국민들에게 한일 합방을 제창하는 동시에 고종, 총리대신 이완용, 소네 아라수쿠 통감 등에게 한일합방 건의서를 올리는 등 친일활동을 하였다.
사망한 뒤 일왕으로부터 훈일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2]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두 명단에는 아들 이석규(李碩奎)도 포함되어 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