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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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대지진(關東大地震)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에 사가미 만을 진앙으로 발생했던 지진이다. 리히터 규모 7.9에서 8.4 사이로 추정된다. 1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3만 7천명이 실종되었다. 이렇게 피해가 심했던 이유는 점심시간이 임박한 시간이라 가열기구를 사용하는 집과 요식업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간토 지진은 실제로 5분사이에 발생한 세 개의 지진으로 발생되었다.최초에 발생한 M7.8의 진원은 双子로、11시58분에小田原의 지하와 三浦半島의 지하에서 약15초간 일어났다. 계속하여 M7.3의 첫번째 여진이 12시 1분에 일어나고, 두번째 M7.2의 여진이 12시 3분에 발생하였다. 이 세개의 지진은 순차적으로 5분이상 계속되었다.
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돌아 수천명(6,000명으로 추산)의 조선사람(주로 조선에서 온 노동자)과 류큐인(琉球人, 오키나와인이라고도 함)들이 성난 군중에 의해 살해된 만행 그리고 사회주의자 학살 사건 등 인권 유린 사태가 일어났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도 지진의 혼란을 틈탄 극우파들의 만행으로 살해당했다. 특히 조선인 학살사건은 조직적으로 벌어진 만행임에도 일본정부에서는 사실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