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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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당은 1945년 9월 16일에 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 등이 만든 보수정당으로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조병옥, 윤보선 등이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4일 우익진영의 대표자 82명은 서울 종로국민학교에 모여 한국민주당(한민당) 준비위원회 발기총회를 개최했다. 한민당 준비위원회는 1945년 9월 8일 성명을 내고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에 정권을 참칭하는 일체의 단체 및 그 행동을 단호히 배격한다"고 선언했다. 1945년 9월 10일 한민당을 대표한 조병옥, 윤보선 등은 미 군정장관 등을 만나 인공은 "일본과 협력한 한인집단"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여운형은 "한인들에게 잘 알려진 부일협력 정치인"이라고 주장하였다. 1945년 9월 16일, 이미 미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한민당이 천도교 강당에서 일천육백여명의 발기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대회를 열었다. 한민당은 창당 선언을 통해 중경의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맞이할 것을 다짐했다.
한민당은 임정 간부와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영수로 추대하였다. 이승만, 서재필, 김구, 이시영, 문창범, 권동진, 오세창 등이 그들이다. 5인은 아직 해외에 있었고 국내에 있던 권동진과 오세창은 영수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1945년 9월 16일 한민당은 정강과 정책을 발표하였다. 정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중공주의 경제정책 수립', '주요 산업의 국영 또는 통제 관리', '토지제도의 합리적 재편성' 등 경제조항은 사회주의 요소를 강하게 담고 있다.
한민당은 1945년 9월 21일 중앙부서를 확정하였는데, 당수제 또는 최고위원제를 채택하지 않고 총무제를 채택했다. 1도(道) 1총무의 원칙에 따라 함경도의 원세훈, 전북의 백관수, 경북의 서상일, 경기의 김도연, 경남의 허정, 충남의 조병옥, 황해의 백남훈, 평안도의 김동원 등 8명의 총무를 뽑았다. 송진우는 수석 총무, 김병로는 중앙감찰위원장, 이인은 당무부장, 장덕수는 외무부장, 김약수는 조직부장을 맡았다.
1945년 10월 20일 송진우의 주도로 환국지사영접위원회(일명 환국지사후원회)라는 외곽단체를 조직하여 해외에서 귀국하는 독립지사들, 사실상 임정 요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1946년 6월 3일에 처음 나온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에 대해 한민당은 신속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민당은 "일부에서는 무슨 역적질이나 한 것 같이 선전하니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승만을 옹호하고 나섰다.
1949년 1월 26일 당을 해체하고 대한국민회, 대동청년단과 통합하여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