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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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Che Guevara, 1928년 6월 14일 - 1967년 10월 8일)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문화어: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이다.
1952년에 볼리비아인민운동에 참가하여 외국자본의 국유화를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1953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과테말라로 가서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가 1954년 멕시코로 망명하였다. 체 게바라는 1955년, 망명지 멕시코에서 자신처럼 망명하던 쿠바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알게 되였으며 그 때로부터 쿠바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투쟁하였다.
1956년 12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혁명가들과 함께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한 후 친미 독재정권이자 미국의 꼭두각시인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쿠바혁명에 참가하며 대대를 이끌어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카스트로는 다른 좌파 혁명가들과 함께 벌인 사회주의 혁명운동에 실패하여 감옥살이를 했었는데-이때 피델 카스트로는 판사 앞에서 역사가 나중에 나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체 게바라등의 동지들의 참여로 다시한번 혁명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바티스타 독재정권은 미국의 꼭두각시요 부패한 독재정권이어서 민중들의 외면속에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쿠바혁명 승리후 쿠바 공산당과 쿠바 혁명정부의 중요직책에 있으면서 쿠바혁명에서 얻은 것들을 지키며 혁명을 더욱 전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쿠바혁명승리후 얼마간 아바나의 라 까바니아요새수비대 사령관으로 있다가 산업발전을 조종하는 책임자로 있었으며 동시에 토지개혁의 준비에 참가하였다. 1959년 11월∼1961년 2월에 쿠바국립은행총재, 1961년 2월부터 쿠바산업부장관도 함께하였으며 1962년에 쿠바통일혁명조직 전국지도부 및 비서국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쿠바에서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났다. 즉, 1965년 4월부터 쿠바를 벗어나 볼리비아로 투쟁무대를 옮겨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으로 투쟁했으나, 1967년 10월 9일 미국이 가담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총살당했다.
1950년대에 그가 공부를 마치기 전에 다닌 여행이야기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2004년에 출시된 바가 있다. 그에게 오토바이 여행은 관광이나 배낭여행이 아닌, 억압받고 가난한 그리고 한센병으로 고통받는 인디오들과 민중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기회였다. 물론 여행에서 쌓은 경험이 사회주의 혁명의식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