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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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龜州大捷]은 1018년 고려 현종때 거란과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편집] 전쟁의 배경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부터 거란과는 거리를 두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거란에 의해서 멸망하였고,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는 북진정책을 국시로 내걸었기 때문에 국경을 마주한 거란과는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거란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려의 정책과 더불어 송나라와 고려가 연합할 경우, 고려가 자신들의 뒤를 칠 것을 우려하여 사전에 고려를 완전히 자신들의 속국 정도로 제압하든지 최소한 송나라와 거리를 두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때문에 거란은 고려를 3차례 침공하였다.
1차 침입시는 서희가 담판을 벌려 강동 6주를 획득하였고, 2차침입시에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공해 왔으나 별 소득없이 돌아갔고, 3차 침입이 강감찬이 귀주대첩을 이룬 침입이었다. 거란은 왕의 친조와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며 소배압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게 하였다.(1018년, 현종 9년)
[편집] 경과
이에 고려는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로 봉하고, 대장군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삼아 소배압을 막도록 하였다. 고려군은 압록강 유역 흥화진의 삼교천(三橋川)에서 거란군과 마주하여 전투를 하였으나, 거란군은 수도인 개경을 목표로 우회하여 계속 남하하였다. 남하하던 거란군은 자주(慈州)에서 다시 강민첨이 이끄는 고려군에게 큰 타격을 받았으나 계속 남하하여 개경근방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거란군 전력이 많이 약해져서 퇴각하게 되었다.
퇴각하던 거란군을 강감찬이 귀주(龜州)에서 매복하고 있다고 크게 물리쳤는데 10만의 거란군 중 돌아간 인원은 수천명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의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것을 귀주에서 크게 이겼다고 해서 귀주대첩(龜州大捷)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