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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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첨(姜民瞻, 963년 11월 29일 ~ 1021년 11월 12일) -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파시조이다. 고려시대 거란의 3차 침입시 상원수 강감찬(姜邯贊)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출전하여 귀주대첩(龜州大捷)을 이끌었다.
- 1005년(목종 8) 4월 문과에 급제, 장사랑, 문림랑 도교령 동정, 안변도호부 장서기(掌書記)
- 1007년 국자주부동정(國子主簿同正), 도호사록참군(都護司錄參軍), 상서직장동정(尙書直長同正)
- 1010년 수애진장(隘守鎭將)- 거란침입시 통군록사(統軍錄事) 조원(趙元)과 함께 흩어진 9일간 성을 지켜 현종을 남쪽으로 무사히 몽진케함.
- 1011년 도관시(都官試) 원외랑(정6품)에 제수되고 비어대(斐魚袋 허리에 차던 비단으로 된 장신구)받음.
- 1012년 5월 안찰사가 되어 경북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을 날카로운 못이 돋아난 일종의 철갑선인 과선(戈船)으로 격퇴.
- 1016년 내사 사인(舍人)
- 1017년 태복경(太僕卿)
- 1018년 12월 대장군(大將軍) 재직 중에 부원수(副元帥)가 됨. 거란 재침입시 적장 소배압을 자산(慈山)에서 대파하였다. 상원수 강감찬(姜邯贊)과 함께 귀주대첩(龜州大捷)을 이룸.
- 1019년 은청흥록대부 응양상장군(鷹揚上將軍) 상주국(上柱國)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 식읍삼백호에 봉해지고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됨. 12월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이 됨.
- 1020년 3월 병부상서 겸 태자태사, 현릉 개장의 공으로 금자흥록대부가 됨.
- 1021년 11월 12일에 별세하니 태자태사 문하시랑에 추증하고 은열(殷烈)이란 시호를 내렸다.
- 1046년(정종 12)에 공신도형(功臣圖形)에 올려 삼한벽상공신이 됨. 청주 충현사에 인헌공(강감찬)과 함께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