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마 미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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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 미쓰루(일본어: 頭山満, とうやま みつる; 1855년 4월 12일 - 1944년 10월 5일)는 아시아주의(혹은 「대아시아주의」라고도)의 입장에서 운동을 행한 국가주의운동가이다.
대외론에서는 일본의 해외 진출을 호소해 구미 열강 제국과의 불평등조약 개정문제에 대해서는 대외의 입장에서 주장을 행해, 또, 빠른 시기부터 대 러시아 동지회에 참가해 러일 전쟁개전론을 주장했다.
김옥균이나 손문,라스 비하리 보스등 일본에 망명한 혁명활동가등의 원조를 도왔다.
1881년, 하코다 로쿠스케, 히라오카 히로시 후토시등과 현양사를 설립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박춘금,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일본어: 水野錬太郎)와 함께 조선인 학살을 주도하였다. [1]
[편집] 참고 문헌
- 마츠모토 켄이치 「도야마 미쓰루의 「장소」」, 문예춘추, 1996년 10월
- 위진진언「대아시아주의와 도야마 미쓰루」, 일본 교우분사
- 요미우리 신문 서부 본사편 「도야마 미쓰루와 현양사」(해조사) 2001년 10월
[편집] 각주
-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