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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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어 *nesil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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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소아시아 | |
사멸 | 기원전 12세기 경 | |
언어의 계통 | 인도유럽어족 아나톨리아어파 히타이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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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부호 | ||
ISO 639-1 | (없음.) | |
ISO 639-2: | hit | |
ISO/DIS 639-3: | hit |
소아시아에 있던 고대의 왕국인 히타이트 제국에서 쓰인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언어. 하투샤(현재의 터키 북부 보아즈쾨이)를 중심으로 기원전 17세기(아마 그 이전)부터 기원전 12세기까지 이용되었지만, 히타이트어와 그 동계언어(정리해 아나톨리아어파로 불린다)는 그 뒤에도 수 백년에 걸쳐서 사용된 것 같다. 히타이트어는 다른 인구어와 다른 점이 많아 빠른 시기에 인도유럽어제어로부터 분리했다고 추측되어 왔다. 인도유럽어족의 「자매 언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다.
목차 |
[편집] 명칭
히타이트어라고 하는 용어에는 문제가 있다. 히타이트라고 하는 것은 구약 성서의 기록을 기념하여 발굴 후에 이 제국에 붙일 수 있었던 명칭이다. 히타이트어로 발견된 문서는 몇 개의 언어로 기록되고 있어 그 중에 히타이트어로 기록된 부분에는 nesili (또는 nasili , 「네자의 말로」의 뜻)라고 쓰여져 있다. 또 Kanisumnili 「카네슈의 말로」라고 기록되었을 경우도 있다. 네자와 카네슈는 히타이트 제국의 중심적 도시의 이름으로, 같은 도시의 가능성도 있다. 원래 히타이트 혹은 하투샤라고 하는 것은 히타이트인이 지배하기 전부터 있던 원주민이 칭한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언어는 역시 히타이트의 문서안에 이용되고 있지만 히타이트어와는 완전히 다른 계통이며 확실하게 구별하기 위해서 하티어(원하티어) 등으로 불린다.
[편집] 해독
히타이트어는 20세기 초에 해독되기 시작했다. 1902년에 요르겐 크누드손(Jørgen A. Knudtzon)이 히타이트어로 새겨된 점토판의 대부분이 아카드식 설형문자로 쓰여져 있는 것을 지적했다. 이것들은 음절 문자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해독이 진행되었다. 1916년에 베드지흐 흐로즈니(Bedřich Hrozný)가 이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고 결론지어 거기에 따라 한층 더 해독이 진행되었다.
[편집] 같은 계통의 언어
히타이트어 이외에도 히타이트 제국이나 그 뒤의 아나톨리아어로 이용된 동계라고 생각되는 언어(루이어-이른바 설형문자 루이어와 상형문자 루이어, 파라어, 리디아어, 리키아어)가 있어 아나톨리아어파로 불린다.
히타이트어는 점토판과 비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히타이트 제국의 비문 혹은 주변국으로 이용된 언어로서 히타이트어를 닮은 루이어와 파라어가 있어 히타이트어와 같이 설형문자로 쓰여졌다.「히타이트 상형문자」라고 불리는 문자는 현재는 오히려 루이어에 가까운 언어를 쓰는데 이용된 것을 알 수 있고 있어 「상형문자 루이어」라고도 불린다.
리디아어와 리키아어는 구히타이트령으로 후에(기원전 4-5세기무렵) 이용되어 그리스 문자에 가까운 문자로 쓰여져 있다. 히타이트어나 루이어에 유래할 가능성도 있다.
히타이트어와 루이어에는 차용어가 많아, 특히 비인도유럽어제어의 후르리(미탄니)어나 하티(원하티)어에 유래하는 종교 용어가 많다. 히타이트어가 주요 언어가 된 다음에도 히타이트 제국에 있어서 종교적 문서의 상당수는 하티어, 후르리어, 아카드어로 쓰여졌다.
[편집] 언어의 특징과 계통
히타이트어는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언어로서 가장 낡은 한 개로 생각할 수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리투아니아어 등 고풍스러운 언어가 나타내 보이는 복잡함이 부족하고 있다.
문법 - 성, 격 히타이트어에는 통성과 중성의 2성(혹은 생물과 무생물인가)밖에 없다. 명사에는 5격밖에 없고(산스크리트어와 리투아니아어에는 8격이 있다), 그 중의 일부는 일반의 사격(술어에 이용되는 격) 어간에 접미말을 붙였을 뿐과 같이 보인다. 동사도 산스크리트어나 그리스어와 같은 복잡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문법의 단순함은 히타이트어가 분화한 뒤에 일어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히타이트어나 트카라어의 문법의 단순함은 인도유럽어족의 오래된 층을 보존하고 있고 그 뒤, 그 밖의 언어에 변화가 생겼다고 하는 설도 있다.
후음 히타이트어에는 후음이 남아 있다. 이것들은 1879년, 다른 인구어의 모음 음가에 의거해 페르디난 드 소슈르가 가설을 냈지만, 그 밖에도 알려져 있는 다른 인도유럽어제어의 언어에는 단독의 음소로서 남지 않았다. 히타이트어에서는 몇 개의 후음이 h로 쓰여진다. 히타이트어는 이 점에서는 매우 고풍이며, 후음의 발견은 소슈르의 가설을 훌륭하게 확증했던 것이다.
계통 이상의 후음의 존재 및 문법적 단순함으로부터 일부의 비교 언어학자는, 아나톨리아어파는 다른 인구어 각 어파 조어보다 빠른 시기에 원인구어로부터 나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인도 히타이트(초) 어족」을 상정해 지금부터 아나톨리아어파와 그 밖의 인도유럽어제어파가 나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2003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러셀 그레이 박사가 분자 진화학의 방법(DNA 배열의 유사도로부터 생물종이 분기해 온 이치를 분명히 하는 계통 분석)을 응용해 인도유럽어족의 87개 언어를 대상으로 2449의 기본어를 조사해 언어간의 근친 관계를 수치화해 컴퓨터 처리해 언어의 계통수를 만들었다.그 결과, 기원 전 6700년즈음의 히타이트어라고 알 수 있었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이며, 여기로부터 기원 전 5000년까지 그리스어파나 아르메니아어파가 나뉘어 기원 전 3000년까지 게르만어파나 이탤릭어파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으로서 고고학적으로는 기원 전 4000년경의 남러시아의 크루간 문화와 기원전 7000년경의 아나톨리아 농경 문화의 두 개의 설이 유력해 되고 있었지만 이상의 결과는 시대적으로는 아나톨리아설을 지지하는 것이다(Russell D. Gray and Quentin D. Atkinson, Nature 2003, 426(6965):435-9.).
다만, 종래 히타이트인은 기원전 21세기경에 흑해 방면에서 남하했다는 것이 통설이며, 그들이 일관해서 아나톨리아에 있었다고 하는 증거는 없다.
분류: 정리가 필요한 문서 | 아나톨리아어파 | 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