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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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崔容信,1909년 - 1935년)은 경기도 샘골(현재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서 봉사한 농촌운동가이다. 소설가 심훈의 대표작인 《상록수》의 본보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 약혼자는 최용신의 영향으로 농촌운동을 준비한 사람이었는데도,소설속에서는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나오는 등 소설과 진짜 역사와는 차이가 일부 있다.
[편집] 생애
1909년 함경남도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여자협성신학교(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재학중 경상북도 포항시와 황해도 수안군 원곡면 용현리에서 농촌운동을 했으며, 1931년 YwCA(기독교청년회)의 파견교사로 샘골에서의 농촌운동을 시작했다. 감리교 전도사인 그는 교회건물을 빌려서 성서, 수예, 한글, 집안살림, 재봉 등 실용성이 있는 과목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32년 강습소 인가를 겨우 받자,마을 사람들이 몇년이나 걸려서 모은 귀한 돈 300원중 150원으로 건축을 시작하였다. 덕분에 1933년 1월 15일 강습소 낙성식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일제는 재학생 110명중 50명을 강제로 수업을 못받게 하는 탄압을 했으나, 최용신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가르침으로써 이를 극복해냈다. 1934년에는 일본 감리교에서 세운 고베여자신학교(神戶女子神學敎)사회사업과에서 유학을 했으나 불과 3개월만에 각기병 등 여러가지 병이 나서 더이상 공부하지 못했다. 그동안 너무 무리한게 화근이었다. 결국 조선으로 돌아가야 했으며,과로와 장중첩증(장이 꼬이는 병)으로 1935년 강습소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