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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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넬리스 마리 프랑크(독일어: Annelies Marie Frank, 1929년 6월 12일 - 1945년 3월 12일)는 독일의 유대인 소녀로 나치 가 네덜란드를 지배한 시기에 쓴 일기로 유명하다. 한국어로는 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됬다. 흔히 애칭 안네(Anne)로 불린다.
[편집] 생애
안네는 1929년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Otto Frank)와 어머니 에디트(Edith)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하자, 안네 프랑크의 가족은 히틀러의 우파정당인 나치당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했다. 이 곳에서 안네는 몬테소리 학교에서 개별 자유 수업을 받았으며, 중학교는 유대인 중학교에 진학하였다. 그 이유는 1938년이후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차별실시로 학교진학에서도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13살이 되던 날에 (후에 안네의 일기라고 불리게 된)붉은 체크 무늬 일기장을 선물로 받았다. 안네는 일기장에게 키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은 서부 유럽으로 확대되어 독일은 중립국가임에도 네덜란드를 점령하였고, 곧 네덜란드 내의 모든 유대인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안네의 아버지 오토(Otto)는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1942년에 안네의 2살 언니인 마르고트가 노동 봉사에 나오라는 명령을 받자 그제서야 사태가 심각함을 깨닫고 가족이 피신할 은신처를 만들었다. 오토는 암스테르담의 프린선흐라흐트(Prinsengracht) 263번지에 있는 팩틴(과일잼에 들어가는 식재료)공장 사무실에 있는 창고를 책장으로 위장해서 교묘하게 막고(오른쪽 그림의 화살표) 1942년 7월 5일에 자신의 가족들을 그곳으로 피신시킬 준비를 하였다. 은신계획은 비밀리에 진행되어서, 안네가 일기장에 아버지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적었을 정도이다.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자, 안네 일가는 생활에 필요한 옷과 교과서만 챙긴채 은신처에 가야 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였는데, 안네는 은신처에 가던 날의 모습을 나치의 반 유대법때문에, 자동차나 전차를 타지도 못하고 비를 맞으면서 걸어간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적었다.이때부터 비밀저택이라고 이름붙인 은신처에서 2년간이나 숨어 살면서 안네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수용소에서의 참상과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같이 생활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불만, 청소년으로서의 여러가지 꿈, '독일인과 유대인은 한 하늘밑에서 살 수 없다'는 마음속의 상처를 일기장에 적었다.
은신처에서 산 이들은 안네의 가족과 다른 이웃 가족(오토 프랑크의 사업을 돕던 판 단과 그의 가족, 치과의사 뒤셀 씨)들을 포함한 총 8명이며, 약 2년 동안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였다. 식료품(주로 감자)과 생활용품은 당시 오토의 공장에 종사했던 3명의 사무직원이 담당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미프 기스(Miep Gies)라는 처녀가 심부름을 해 주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안네의 표현을 빌리면 쉴 틈이 없었을 정도로 행동의 자유가 없는 은신처 사람들의 심부름을 해 주었다.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압수과정에서 안네의 일기와 그가 습작한 글들을 몰래 빼돌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며, 일기에도 나오는 애인과 결혼하여 살다가 1982년 죽었다. 1944년 8월 4일 밤, 익명의 밀고를 받은 나치의 게슈타포는 이 은신처를 급습하여 8명 전원을 체포하고 안네의 가족을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이송했다. 그래서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4일로부터 불과 며칠전의 날짜에서 끝나 있다.
안네의 가족을 고발한 밀고자의 신분에 관해서 지금까지 서너 가지 추측이 있었다. 이를테면 창고지기가 한 사람당 5길더를 받고 밀고를 했다는 설이 있는데, 모두 이를 뒷받침 하는 증거는 없다. 안네는 16세의 나이로 1945년 3월에 유대인 강제수용소 베르겐 벨젠 (Bergen-Belsen)에서 티푸스로 죽었으며,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죽었다. 언니 마르고트도 병으로 죽었는데, 그의 죽음을 본 안네가 상심이 커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네의 가족 가운데 아버지 오토만이 옛 소련군의 수용소 해방으로 생명을 건졌는데,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했다. 그외 은신처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에서 병이나 가스실에서의 학살로 죽었는데, 판단 씨의 아들 페터는 독일군의 수용자에 대한 강제이주로 어디론가 끌려간 뒤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안네가 쓴 일기는 1947년에 아버지 오토의 편집(안네의 性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드러나는 부분, 부모와 은신처의 다른 가족을 비난하는 부분이 삭제되었다)을 거쳐 출판되었으며, 이 일기는 약 60개 국어로 번역되어 약 3천 2백만 권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한국어판은 안네 아버지가 편집한 원고를 출판해오다가, 원고를 모두 번역한 무삭제판이 안네가 습작한 단편소설들과 함께 출판되었다. 안네의 가족이 피신하여 살던 집은 현재 안네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편집] 읽어보기
1959년에는 조지 스티븐스(George Stevens) 감독이 안네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 세 분야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