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토 피노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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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에스파냐어: 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1915년 11월 25일 - 2006년 12월 10일)는 칠레의 장군이며 정치인이다.
쿠데타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며 정권을 잡은 1973년 9월 11일부터 시민들의 민주화요구 데모와 선거로 결국 물러나게 된 1990년 3월 11일까지 칠레를 통치한 반공 독재자였다.
미국이 좌파 정치인인 아옌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친미정권수립을 위해 칠레 쿠데타 세력을 지원했다는 주장도 있는데[1],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에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의 문서들에 이처럼 미국이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초기부터 전복을 바라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쿠데타에서의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은 공개된 문서들로는 증명되지도 부정되지 않는다. 이 사안과 관련된 상당수의 문서들은 아직도 비밀로 분류되어 있다. 한편, 미국의 CIA에서 과거의 기록과, 과거 요원들과의 인터뷰 등을 검토한 조사 결과[2]에 의하면 "(CIA는) 피노체트가 대권을 취하도록 돕지 않았다"고 하며, 2000년 11월의 백악관의 보도 자료[3]에 따르면 "이 당시 미국 정부가 허락한 활동들이 칠레의 정치적 분열을 악화시켰으며, 칠레의 오랜 민주 선거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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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피노체트식 독재
피노체트의 독재는 불과 일주일만에 좌파 정당(사회주의 당, 인민 연합,칠레 공산당 등) 가입자등 정치적 반대자들을 2만명이나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하는 등 피의 독재로 불리기도 한다. 피노체트 자신도 나뭇잎까지 자신의 통제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편집] 이후
그의 독재로 인한 국가폭력 피해자 중에는 피노체트 정권을 비판한 에스파냐사람에 대한 납치 80건도 포함되어 있다. 피해와 관련하여 칠레 민중들은 피노체트를 "살인마"라고 부르며 미워하며, 칠레 사법부에서도 그를 가택연금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망으로 사법적인 처벌은 하지 못하였다.
[편집] 마지막 생애와 죽음
2006년 11월 25일, 피노체트의 91번째 생일에 피노체트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보낸 연설문에서 "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오늘, 어느 누구에게도 원한은 없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 그동안 행해졌던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겠노라"고 전했다. 연설문은 그의 부인이 대독하였다.
그가 집에 연금되고 난 이후인, 2006년 12월 3일 아침, 피노체트에게 심장마비 증세가 찾아왔고 그 날 병자성사(病者聖事)를 받았다. 12월 4일, 칠레 항소 법원은 그의 가택연금을 푼다는 명령을 내린다. 군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10일 (공교롭게도 세계인권선언일), 칠레인의 인권을 탄압했던 독재자 피노체트는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합병증과 폐수종이었다. 산티아고 중심가에서는 피노체트의 반대 세력이 모인 대규모의 거리 시위가 있었고 한편 지지자들의 시위가 군병원 주위에서 있었다. 피노체트의 아들 마르코 안토니오는 피노체트가 무덤에 대한 모욕과 파괴행위를 막기 위하여 화장을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칠레 정부는 전임 대통령 서거시 행해지는 국장은 없을 것이고 대신 전임 군사령관로서의 군장(軍葬)을 치룰 것이라고 밝혔다. 칠레 정부의 애도일 선포는 없었으며 다만 군대 병영에 조기를 내거는 것은 허락하였다. 현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렛의 아버지는 한때 피노체트의 1973년 쿠데타 이후 투옥되고 얼마지 않아 심장합볍증으로 별세한 바 있다. 칠레 대통령미첼 바첼렛은 "피노체트의 국장에 참여하는 것은 양심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의 화장은 2006년 12월 12일에 행해졌으며, 그의 유해는 가족들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