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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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 파동(-汁波動)은 1965년도 중학교 입시 문제에서 무즙과 관련된 문제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지나칠 정도로 높은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다.
[편집] 사건 개요
1964년 12월 7일에 치른 서울 지역 전기(前期) 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18번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 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 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보기 1번 ‘디아스타제’가 정답이라고 발표했으나, 2번 ‘무즙’을 답이라고 선택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무즙도 답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고을 수 있음을 보여, 무즙도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1960년대에는 중학교 입시도 오늘날의 대학입시 못지 않게 치열하던 시절이었으며, 일부 사립 명문에 입학하려는 과열된 경쟁이 있었다. 문제 하나를 맞고 틀리는 것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므로 학부모들이 무즙도 답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반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한편, 교육 당국은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시험 다음날인 12월 8일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다가, 반발이 가라앉지 않자 12월 9일에는 해당 문제를 아예 무효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1번을 정답으로 선택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반발하자 다시 원래대로 디아스타제만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하는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적공방으로 이어졌고, 1965년 3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하며, 이 문제로 인해 불합격된 39명의 학생들을 구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막을 내렸다.
[편집] 사건의 영향
- 이 사건은 지나칠 정도로 과열된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무렵부터 중학교 무시험 전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듬해에도 창칼 파동 등 중학교 입시에 대한 문제가 계속 드러나자 1969년부터 중학교 입시를 철폐했다.
- 흔히 ‘엿 먹어라’라는 욕이 무즙 파동때 학부모들이 실제 무즙으로 엿을 고아서 먹어보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엿 먹어라’는 욕은 20세기 초에도 사용되었다. 디비딕 닷컴에서 무즙 파동과 이 욕을 연관하여 설명한 내용이 유명해지면서, 이와 같은 오해가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