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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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반 또는 탈레반(파슈토어: طالبان, 다리어: طالبان)은 아프간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조직이다. 탈레브 혹은 탈리브(talib)은 전통식 이슬람학교(마드라사) 등의 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탈레반은 '학생조직'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7년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기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얼굴없는 지도자' '애꾸눈 지도자'로 알려진 무하마드 오마르는 추종자들 사이에 '물라'(mulla;mullah)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탈리브'에 상대되는 말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편집] 탈레반 정권의 탄생
탈레반이 전국으로 세력을 확대할 당시의 아프간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프간은 1979년 옛 소련군의 침공 뒤 점령하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조직들을 중심으로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저항세력들이 10년 이상 반 소련 항쟁을 벌였다. 1989년 소련 붕괴 직전 모스크바는 아프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아프간에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정불안이 계속됐고 정부의 공백을 틈타 군벌들이 내전을 벌였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등 냉혹한 군벌들은 카불 시내를 폭격해 수천~수만명의 시민들을 숨지게 하기도 했다.
이같은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갔다. 카불의 무력한 기득권층과 북부 양귀비 재배 지역에서 아편 매매 수입으로 횡포를 부리던 이른바 '마약군벌'들과 경합하다가 1997년에는 정권을 장악했다. 군벌 경쟁자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군벌들 중 일부는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아프간 공격 때 미군 쪽에 협력했다) 정국은 다소 안정되는 듯했다.
[편집] 이슬람 극단주의 정책과 국제사회의 비난
탈레반이 집권할 당시만 해도 미국은 옛 소련의 영향력에서 아프간을 빼낸다는 쪽에 무게를 둬 경계를 하지 않았었다. 실제 당시 탈레반 정권은 민주적 투표로 집권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통성이 있는 정권으로 인정을 받았다. 국제사회의 공인은 몇몇개 나라에서 받는데 그쳤으나 아프간 내 지지율은 60% 이상이라는 조사결과가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뒤에는 탈레반의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숙정 작업에 그치지 않고 언론을 탄압, 대부분 방송들을 폐쇄했으며 '서방 문화를 전파하는' 언론 활동을 금지시키고 종교 자유를 억압했다.
특히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한 것은 여성 교육을 전면 금지시키고 모든 여성들을 집안에 가둔 탈레반의 조치였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 부인 등이 나서서 국제무대에서 탈레반을 비판했던 원인은 바로 탈레반의 여성탄압 정책이었다. 탈레반은 부르카(얼굴과 온몸을 가리는 검은 옷)를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물론,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전면 금지시키고 심지어 집 밖에 여성이 혼자서, 혹은 여성들끼리 외출하는 것도 막았다. 남성이 특정 여성을 '간통했다'라고 지목하기만 하면 여성을 유죄판결에 돌로 때려죽이게 하는 끔찍한 사형제도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특히 아프간은 옛 소련 점령시절 사회주의 교육정책으로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고 사회활동도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보다 훨씬 활발하게 벌였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이같은 탄압이 가져온 충격은 더욱 컸다.
아프간 안팎을 또한번 충격에 빠뜨린 것은 세계적인 유적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얀의 거대 불상들을 대포로 파괴한 것. 2001년 봄 벌어진 이 사건은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편집] 미국의 공격과 탈레반 정권의 붕괴
미국은 1993년 소말리아, 수단에서 미군을 공격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오래전부터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1996년부터 탈레반 정권의 보호 아래 아프간에 숨어있다고 주장해왔다. 2001년 9월11일 뉴욕 등지에서 테러 대참사가 벌어지자 미국은 곧바로 알카에다와 빈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며, 그해 11월 빈라덴을 색출한다며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B2 스텔스기, 무인정찰기 프레데터 등을 총동원한 미국의 막강한 화력 앞에 탈레반은 변변한 저항도 못 해보고 무릎을 꿇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무력한 아프간을 상대로 재래식 폭탄으로서는 사상 최악의 폭탄이라는 모아브 폭탄까지 사용하려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했으나, 집속탄을 마구 뿌려 아프간의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피해를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정권은 축출됐으며 무하마르 오마르는 동부 파키스탄 접경지대로 피신했다. 그러나 미국의 침공 이래 5년이 지나도록 미군은 빈라덴을 잡지 못했으며 오마르는 2006년말까지도 건재한 채 오히려 남부에서 탈레반을 재규합하고 있다. 미국이 빈라덴을 '적법한 절차'가 아닌 전쟁으로 죽이려 하고 무고한 아프간인들까지 살상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이 제기됐다. 특히 타국의 집권세력인 탈레반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린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하고 반소련 독립항쟁 지도자의 아들로 신망있는 친미파 지도자였던 하미드 카르자이를 아프간 새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카르자이는 집안의 명망과 미국의 지원 등에 힘입어 과도정부를 이끌었으며,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카르자이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후 관리 책임을 맡았으나, 아프간 내 고질적인 정치적 분열과 남부의 계속되는 전투 때문에 정국을 효과적으로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을 공격하고 치안유지군(ISAF)이라는 이름으로 다국적군까지 불러들였으나 탈레반을 완전 제거하는데 실패했다. 탈레반이 극단주의 때문에 안팎의 비난을 받긴 했으나 여전히 아프간인들 상당수, 특히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류: 중립적 시각 분쟁 | 탈리반 | 아프가니스탄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