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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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선(大諲譔, ?~? 재위:907년경-926년)은 발해의 15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시호는 없으며, 연호는 청태이다. 다른 역사가들은 슬플 애(愛)를 써서 애제라고 한다. 제 13대 왕 명종 경황제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고 알려졌지만, 김육불이 그의 저서 《발해국지장편》에서 대위해가 발해 제 14대 왕이었으므로 애왕이 대위해를 이어 다음 왕이었다고 주장했다. 대위해 왕의 치적에 대해서 지금 연구하고 있다.
[편집] 발해의 최후
애왕의 재위중엔 황소와 안녹산의 난으로 당나라의 힘이 약해졌다. 이 때 태조 주전충이 당 애재를 쫓아내고 직접 황제가 되어, 후량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한편, 신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생겨 지방세력들과 농민반란군의 항거가 크게 부각되었다.
한편, 거란족은 7세기 전·후반에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당나라 내부에서 거듭된 혼란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들은 야율아보기를 추장으로 삼고, 동쪽과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애왕은 요나라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발해 내부의 거듭되는 왕실 쿠데타와 귀족세력의 쟁탈전으로 지도력을 많이 상실했다. 한편, 애왕은 고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결국 애왕은 야율아보기가 보낸 군사들에게 사로잡혔다.
야율아보기는 처음엔 그를 정성껏 대접했다. 그러나 애왕이 남아있는 발해 군사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야율아보기는 화가 나서 그를 압송했다. 그리고 애왕에게는 자신의 애마 오로고의 이름을 따서 오로고로, 애왕 비는 자신의 부인 소황후의 애마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였다.
한편, 애왕의 맏아들이자 발해 태자 대광현은 926년 1월에 고려로 귀순하였다.
[편집] 발해고의 기록
비록 애왕의 항복으로 발해는 멸망했지만 발해인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유득공의《발해고》에 따르면 10세기 중엽부터 12세기까지 발해인들이 거란에게 대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발해국과 정안국, 대원국은 발해의 유민들이 세운 대표적인 나라이다. 후발해국은 서기 928년에 건국했고, 해체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안국은 936년에 건국하고 985년에 거란의 압박으로 멸망했다. 985년에 정안국은 고려 성종에게 몇 차례 특사를 보냈다. 정안국의 특사들은 고려와 정안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것을 원했다. 그리하여 고려 당국은 청천강을 통해서 무역을 맺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고려 정부에서는 정안국에게 원조하자는 세력들과 정안국과 외교관계를 철회하자는 세력들이 있었는데, 결국 거란에게 침입받을까 두려워 외교관계를 철회하고 말았다. 대원국은 12세기에 세워졌고, 처음으로 "황제"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금나라와 전쟁에서 패배해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글은 《발해고》에 게재된 내용을 간추려 실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