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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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崔濟愚, 1824년 음력 10월 28일(12월 18일) - 1864년)는 동학의 창시자이다. 호(號)는 수운(水雲)이다. 경주에서 태어났다.
[편집] 연대기
- 1824년 경주군 현곡면에서 출생
- 1833년(10세) 모친 별세
- 1840년(17세) 부친 별세
- 1842년(19세) 울산 밀양박씨와 결혼
- 1844년(21세) 장삿길에 나서 이후 10년간 전국을 주유
- 1854년(31세) 장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경주 용담집에 들어앉아 구도의 사색 시작. 10월 부인의 고향인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로 이사
- 1856년(33세) 양산 천성산 내원암으로 가 49일간의 입산기도를 시작했으나 숙부의 별세로 47일만에 중단.
- 1857년(34세) 다시 천성산 적멸굴로 가 49일 입산기도. 기도를 마친 후 생업으로 용광업을 경영.
- 1858년(35세) 용광업 그만 둠.
- 1859년(36세) 울산을 떠나 경주 용담으로 귀향.
- 1860년(37세) 음력 4월 5일 한울님을 만나는 종교체험.
- 1861년(38세) 4월경 주문과 심고법을 만들어 수행하는 방법을 정하고 교리체계를 세움.
- 1861년 6월부터 용담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포덕(布德) 시작. 7월에 <포덕문> 지음.
- 1861년 8월 성리학을 숭상하는 유생들이 수운이 가르치는 도를 서학으로 몰기 시작. <안심가> 지음.
- 1861년 11월 경주관아에서 수운의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짐. 수운은 용담을 떠나 울산, 부산을 거쳐 전라도 남원으로 감.12월에 남원에 당도. 이후 남원의 교룡산성 은적암에서 6개월간 체류.
- 1862년(39세) 7월 경주로 돌아가 박대여 집에 은신.8월 측근들에게 포덕에 나서라고 권유.
- 1862년 9월 29일 경주진영에서 수운 체포. 수운은 10월 5일 석방되어 용담으로 돌아옴. 11월 9일 흥해 매산리로 피신. 12월에 최초로 접주들을 임명.
- 1863년(40세) 3월 다시 용담으로 돌아옴. 5월 하순부터 적극적으로 교화활동. 7월에 최경상(해월)을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
- 1863년 12월 10일 조선왕조에 의해 체포됨.
- 1864년(41세) 3월 10일 대구에서 참형당함.
(참고문헌 : 《동학 1 - 수운의 삶과 생각》, 표영삼 지음,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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