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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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鄭寅普, 1893년 5월 6일 - 1950년 9월 7일)는 한학자·역사학자이다. 자는 경업(經業), 호는 위당(爲堂), 담원이다.
[편집] 생애
1893년 서울 명동에서 명문가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유명한 학자인 이건방에게서 사사했으며, 1913년 상하이로 건너가 박은식, 신규식 등과 함께 동제사를 결성했다.
귀국한 뒤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하며 저술 활동을 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 등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저항하여 산 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광복 후에 국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고 1946년 《조선사연구》(서울신문사)를 저술했다.
그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초대 감찰위원장에 선임되었으나, 임영신의 독직 사건을 두고 대통령 이승만과 갈등을 빚고 물러났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북조선으로 간 뒤 사망 시기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한동안 신경완의 증언에 의해 그해 11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공식 사망일은 9월 7일로, 북행 직후 황해도에서 폭격 피해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북조선 부수상을 지낸 홍명희와는 자녀끼리 결혼하여 사돈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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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저서
- 《조선고전해설》(1931)
- 《양명학연론》(1933)
- 《조선사연구》(1946)
- 《담원 정인보 전집》(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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