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에 창립되어 1931년 5월까지 지속된 한국의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이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1927년 2월 15일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대항, 정치-사회 사상의 이념을 초월한 독립운동단체 ‘신간회’를 창립했다. 안재홍, 백관수, 신채호 등 34인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월남 이상재가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신간회는 국내외에 100여개가 넘는 지회를 조직했고 회원도 많을 때는 4만여명에 달했다. 20년대 중반이후 신간회 활동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민족독립이론을 발전시킨 점이다. 3·1 운동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수용되면서 자유주의를 기저로 한 민족주의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러던 것이 신간회에 의해 민족독립을 상위개념으로 하여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결합했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는 이를 지원하는 한편 대규모의 민중대회를 준비하다가 조병옥 이관용 등 간부 44명이 체포돼 위기를 맞았다(1929년 12월 3일). 그러나 창립 이래 해산된 1931년 5월까지 4년여 동안 한국독립운동의 중심체 역할을 해온 신간회가 해산한 것은 일제의 직접적 탄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좌우갈등을 극복하지 못해서였다.
분류: 1927년 설립 | 1931년 해체 | 한국의 독립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