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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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식 (1920년 - 2005년 8월 20일)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아시아의 철인'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1950-70년대 최고의 홈런 타자였다.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내려왔다. 동산중에서는 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금융조합연합(1949년), 육군팀(1950년 - 1959년)을 거치며 타자겸 외야수로 활약했다. 1954년 제1회 아시아 선수권 대회부터 1965년 제6회 대회까지 국가 대표로 연속 출전한 그는 필리핀에서 열린 제6회 대회에서 특별상(철인상)을 받으며 ‘아시아의 철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8년 제일은행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치고 감독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20여년 간 112개의 홈런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제일은행 감독을 맡았던 그는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야구를 그만두고 제일은행에서 근무했다. 1978년 경기고 감독으로 복귀한 후, 하위에 속했던 팀을 화랑대기 준우승, 봉황대기 4강으로 올려놓았다.
대한야구협회 경기이사와 심판이사로 일한 후, 1981년 12월 15일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감독에 취임했다. 비록 13경기(3승 10패)만에 역대 최단명 감독의 기록을 남긴 채 감독직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삼미의 김진영 감독과 함께 인천 야구의 대부로 남았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KBO 심판위원장을 역임하고, 1991년 LG 트윈스 2군 감독을 끝으로 그라운드에서 물러났다.
위암으로 투병하다, 2005년 8월 20일 새벽 서울에서 세상을 뜬 후, 경상북도 영천 참전용사 묘역에 묻혔다.
분류: 1920년 태어남 | 2005년 죽음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