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일본어: 豊臣秀吉, とよとみ ひでよし, 1536년 2월 2일 - 1598년 9월 18일)는 일본의 무장이다.
오와리쿠니(尾張國, 현재의 아이치 현)에서 하급 무사 기노시타 야우에몬(木下彌右衛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고자루(小猿)이다. 후에 기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郞),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후지하라 히데요시(藤原秀吉)로 개명하고, 다이죠 다이진(太政大臣)과 간파쿠(關白)의 지위를 겸임하게 되면서 도요토미(豊臣)라는 성을 썼다.
[편집] 생애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 본래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는데, 항상 신발을 들고 노부나가의 뒤를 따라다녔으며, 노부나가는 이러한 그의 충실함을 보고 신임을 하게 되어 크게 중용하였다. 히데요시는 기지와 용병술에 뛰어나 각 지방을 정벌하여 세력 확장에 공을 세워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고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다.
히데요시는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했으며, 그의 오사카 성에는 늘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물려 받았다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깃발이 걸려 있었다. 또 자신의 칼에도 천하포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그는 1584년에 동부 일본의 큰 세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고, 1590년에는 천황의 권위를 빌려 마지막 남은 여러 영주와 호족을 정복하여 죽은 노부나가와 자신의 숙업인 전국 통일을 이룩하여 100년 간에 걸친 전쟁의 혼란을 수습하였다.
이후 그는 대륙 진출에 대한 야망을 꿈꾸며 2년 후 20만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순신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은 점차 퇴각하기 시작했으며 1598년 그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노량 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 간 끌어오던 전쟁은 실패하고 일본군은 총퇴각하였다. 이 전란을 통해 일본은 전공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인들의 귀나 코를 베어가는 등 잔학 행위를 자행하였다. 또 조선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약탈하고 2-3만 명의 도공들을 납치해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이룩하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일본은 세키가하라 전투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하여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지고 도요토미 정권은 2대째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