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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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金相玉, 1890년 1월 5일 ~ 1923년 1월 22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다른 이름은 김영진(金永振), 아호는 한지(韓志)이다.
서울 출생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어렵게 성장했으나, 10대 중반부터 기독교에 입문하고 야학에 다니면서 국산품장려운동을 벌이고 경상북도 풍기(현 영주시)에서 독립 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를 조직하는 등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3·1 운동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항일 운동에 뛰어들어, 반일 비밀 조직인 혁신단을 결성한 뒤 지하 신문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해 배포했다. 다음해에는 풍기 시절부터의 동지인 한훈 ,북로군정서의 김동순과 함께 요인 암살을 위한 암살단을 조직해 구체적인 암살 계획까지 세운 것이 드러나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이 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 신익희, 이동휘, 조소앙 등과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2년 무기와 항일 문서를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당시 종로경찰서가 독립 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투척 사건 이후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신하던 중, 열흘 후인 1월 22일 효제동에서 경찰의 포위에 맞서 싸우다 자결했다.
마지막 은신처는 혁신단 시절의 동지인 이혜수의 집이었는데, 효제동은 그의 생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가 수많은 일본 경찰의 포위에도 단신으로 여러 시간 동안 버티며 총격전을 벌인 이 사건을 당시 학생이던 서양화가 구본웅이 직접 목격하여, 1930년 시화집 《허둔기》에 스케치와 추모시를 함께 실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듬해인 1924년, 임시정부 외교부장이며 김상옥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조소앙이 그의 전기를 집필해 간행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1998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동상이 설치되었다. 김상옥은 일제강점기 초기의 무장 테러 운동과 의열단의 용감한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대한민국 국가보훈처가 선정해 기념 사업을 벌이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1992년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분류: 1890년 태어남 | 1923년 죽음 | 한국의 독립 운동가 | 테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