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볼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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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볼츠만 (Ludwig Boltzmann, 1844년 2월 20일 오스트리아 빈- 1906년 9월 5일)은 통계 역학과 통계 열역학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이다.
[편집] 생애
1844년 빈에서 태어난, 볼츠만의 아버지는 세무 공무원이었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베를린에서 이사 온 시계공이었다. 그는 가정에서 양친으로부터 초등교육을 받은 후에, 린츠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그의 나이 15세에 아버지를 여윈다. 1963년 빈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배웠으며 1867년, 박사 학위를 받고 요제프 슈테판의 조수가 된다. 1869년 그라츠(Graz)의 이론물리학 교수자리를 얻는다. 이후 뮌헨, 빈, 라이프치히를 거쳐 결국 1902년에 다시 빈 대학으로 돌아와 요제프 슈테판의 자리를 맡는다. 그는 물리학 뿐만아니라 철학도 가르쳤는 데, 그가 가르친 학생 중에는 린츠의 비트겐슈타인도 있었다. 1906년 스스로 목을 메 자살했으나 명확한 자살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볼츠만은 통계역학의 토대를 다진 것으로 유명하다. 통계역학은 개개의 입자(분자)들의 미시적인 성질과 그 입자들로 이루어진 거시적인 성질을 연관시키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다. 볼츠만은 1871년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1884년연 슈테판-볼츠만 법칙을 유도한다. 통계역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3년에 한 번씩 볼츠만 메달이 주어진다.
S = k * logW
(엔트로피는 확률 W의 자연로그와 비례한다.) 여기서 k는 볼츠만 상수를 나타낸다. 이 관계식은 그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분류: 1844년 태어남 | 1906년 죽음 | 자살한 사람 |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