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그레고리오 13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그레고리오 13세 | ||||||||||||||
|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라틴어: Gregorius PP. XIII,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XIII)는 제226대 로마 교황(재위: 1572년 5월 13일 - 1585년 4월 10일)이다. 본명은 우고 본콤파니(이탈리아어: Ugo Boncompagni)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을 구체화시킨 훌륭한 교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편집] 생애
1502년 1월 1일,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으로 교회법과 시민법을 공부한 후 28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531년부터 1539년까지 볼로냐에서 법학 교수로 지내다가 1539년부터 로마에서 일하였다. 그는 이미 자코모라는 아들을 하나 두었으나 40세에 신부가 되어 카롤로 카라파 추기경을 도와 일하였다. 교황 비오 4세의 부름을 받아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회법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하였다.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가 끝났을 때 로마로 돌아와 추기경이 되었다. 에스파냐에 파견되어 이단의 소지가 있었던 톨레도의 대주교 바르톨로메 데 카란사의 사건을 심사하였다. 그리고 교황 비오 5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레고리오 13세는 교회 재건과 대응 종교 개혁의 더 효과적인 추진을 위하여 무력에 의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예로, 1572년 8월 24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에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이 일어났을 때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감사 기도를 하며 이를 환영하였다. 또한 그는 엘리자베스 1세가 위그노파를 지원하자 영국에 대항하였다. 아일랜드 침공 작전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스웨덴의 왕이 프로테스탄티즘을 버리고 교황청과 교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직자의 결혼과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반대하였으므로 교섭이 중단되자 스웨덴은 결국 개신교로 넘어가고 말았다. 폴란드와 저지대 그리고 독일의 일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네덜란드 남부도 로마 가톨릭이 중심이 되었고 루뱅의 미셸 바유스가 자기 학설의 오류를 포기하였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의 공작 알베르트와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오스트리아, 카린티아, 스티리아에서 개신교 세력을 물리쳤고 예수회가 인골슈타트, 레겐스부르크, 그라츠에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풀다, 마임트, 클레베스, 쾰른도 로마 가톨릭으로 복귀하였다.
그레고리오 13세는 자기 아들 자코모를 산탄젤로 성의 성주로, 두 조카들은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그레고리오 13세는 예수회를 적극 지원하였다. 유럽과 인도, 청나라, 브라질에서 예수회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1579년 예수회원 마테오 리치가 청나라의 마카오에 도착하여 중국의 말과 풍속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그레고리오 13세는 프란치스코회, 삼위일체회, 카푸친회도 후원하였다. 그리고 가르멜회의 쇄신도 지원하였다. 독일, 영국, 그리스에서 성직자 양성을 위한 기숙사들을 지원하였으며 그레고리오 대학교의 전신인 독일 기숙사를 확장하였다. 1575년에는 성년을 발표하여 30여만 명이 로마를 순례하였다. 1582년에는 그레고리오 달력을 제정하여 달력을 교정시켰고, 교황 비오 4세가 시작한 교회법전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의 순교록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다. 게다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그레고리오 성가대 설립과 퀴리날레 언덕에 여름 별장을 짓는 데도 많은 돈이 들어갔다. 그레고리오 13세는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권세가들의 토지나 재산을 압수하는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이는 미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하여 교황청을 향해 창검을 들었으며, 이리하여 교황과 귀족들 간의 해묵은 반목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점차 이탈리아 전역은 무법천지가 되어갔다. 이러한 혼란 와중에 그레고리오 13세는 별안간 선종하였고, 그의 후임자는 소란한 정국을 진정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다.
전 임 비오 5세 |
제226대 교황 1572년 5월 13일 - 1585년 4월 10일 |
후 임 식스토 5세 |
이 문서는 교황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